미스테리, 공포

풍선 아저씨 행방불명 사건

이름모를뮤지션 2020. 11. 10. 15:23

풍선 아저씨 행방불명 사건

 

어릴 땐 가끔씩 몸에 풍선을 아주아주 많이 달면

하늘을 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을 했는데요

이런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던 사람이 있습니다.

 

'풍선 아저씨(風船おじさん)'란 별명으로 불리는 스즈키 요시카즈 (鈴木嘉和)

 

풍선 아저씨의 일생

 

1940년 도쿄도에서 피아노 조율사 일가에서 태어나 쿠니타치 음악 대학 부속 고교를 졸업하고 야마하의 계약 사원으로 코가네이시에서 피아노 조율업을 했다. 1984년 44세의 나이로 음악 교재 판매 회사인 '뮤직 앙상블'을 개업하고 오케스트라와 피아노 소리를 녹음한 테이프 판매를 개시했다. 이외 여러 음악 사업을 펼쳤으나 잘 되지 않아서 빚에 쫓기던 그는 "비닐 풍선 26개를 붙인 곤돌라를 만들어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곤돌라를 타고 미국에 건너가서 빚을 갚겠다!"라는 황당무계한 발상을 하기 시작했다.

 

스즈키의 판타지 호는 1989년 요코하마에서 열린 박람회에서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출품을 하려면 3,000만엔[1]을 내야 했고 기껏 출품에 성공했더니 회장 내 전시 위치도 영 좋지 않는데다가 박람회 자체도 흥하지 않자 폭발한 스즈키는 박람회 마스코트인 '부루아쨩(ブルアちゃん) 인형옷을 입고 높이 30미터의 탑에 올라가서 "단체 버스 주차장을 개방해라!"라는 현수막을 걸고 7시간이나 서서 항의를 하다 출동한 경찰에 체포되었다. 경찰서에서 풀려난 이후에도 그는 헬륨 풍선의 부력으로 10미터에서 20미터 지상으로 떠오를 수 있다는 '공중 산책'이라는 곤돌라를 박람회장에 자비로 설치했다. 한편, 뮤직 앙상블은 1990년 5억엔 가량의 채무를 안은 뒤 최종적으로 도산했다.

 

 

타미가와 하천 소동

 

자신의 회사가 파산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본격적으로 모험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1992년 4월 17일 풍선 아저씨는 경찰들의 제지에도 아랑곳않고 도쿄 오타 구 타마가와 강에서 치바현 쿠쥬쿠리 해안을 향해 의자에 5미터 크기의 풍선과 2.5미터 크기의 풍선을 각각 2개씩 동여매고 오후 12시 45분경 날아올랐다. 이 때 15kg의 모래 주머니 2개가 떨어져나가며 고도가 급상승하는 바람에 예정된 고도 400m를 넘긴 5,600m 고도[2]에 도달하자 당황한 풍선 아저씨는 라이터로 5미터 풍선 끈을 지져서 끊어내 겨우 고도를 하강시켰고 오후 1시 40분, 출발 지점에서 24km 떨어진 도쿄도 오오타구의 민가 지붕에 불시착했다. 이때 풍선 아저씨 자신은 왼손에 상처만 입은 반면 민가는 지붕이 무너지고 TV 안테나가 꺾이는 피해를 입었음에도 피해 민가에 손해배상은 커녕 별다른 사과의 말이나 행동도 없이, 오히려 이 도전이 성공하면 다음엔 하와이를 향한 모험을 계획할 예정이었다고 인터뷰했다.

 

'풍선 아저씨'라는 별명은 이 사건을 보도했던 미디어에서 붙인 것으로, 타마가와에서의 실패를 본 많은 미디어들이 거리를 두게 되어서 판타지 호가 출발할 때 찾아온 언론은 후지 테레비뿐이었다고 한다.

 

판타지 호 사건

 

반년이 지난 1992년 11월 23일, 스즈키의 전화에 불려나온 도시샤대학 교수 미와 시게오(三輪茂雄)와 학생 7명, 아사히 신문의 통신 국장, 전날부터 밀착 취재해 온 후지 테레비 와이드쇼 '굿모닝! 나이스데이' 취재진, 그리고 스즈키의 지지자들이 비와호 호반에 모인 가운데, 풍선 아저씨는 헬륨 풍선 여러개를 단 판타지 호의 시험 비행을 시작했다.

원래 이 날의 명목은 단순한 시험 비행이었으며, 판타지 호가 120미터까지 상승하고 난 다음 일단 지상에는 착륙하였다. 그러나 갑자기 16시 20분경 스즈키는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주위의 제지를 뿌리친 채 습용 로프를 풀고 비와호 호수에서 미국 네바다주 샌드 마운틴을 향해 출발했다. "어디로 가는 건지?"라고 묻는 미와 교수의 말에 그는

"미국이에요."

라는 대답을 남겼다. 그는 주위 사람들에게 제트 기류를 타면 40시간 내에 미국에 도착할 거라 생각한다는 말을 했었다.

다음 날 풍선 아저씨는 가족들에게 휴대 전화로 "아침 해가 아름다워요"라는 연락을 보내왔다.

 

SOS 신호 이후 발견되었을 때 뉴스 화면.

 

하지만 2일 뒤 판타지 호로부터 SOS 신호가 발신되었고, 해상보안청의 수색기가 출동했다. 판타지 호는 미야기현 긴카산 동쪽 약 800m 해상에서 발견되었고, 수색 헬기를 본 스즈키는 헬기를 향해 앉아 있는 자세로 손을 흔들면서 SOS 신호를 중지했다. 당시 판타지 호의 고도는 평균 2,500m로 높을 때는 4,000m 상공까지 도달했다고 한다. 약 3시간 후 판타지 호가 구름 속으로 사라지자 수색기는 추적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판타지 호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마지막 순간이었다.

전문가는 실험 전에 풍선으로 미국에 간다니 말도 안 된다고 이야기했으며, 풍선이 미국까지 갔다는 증거가 없으니 아마 바다에 떨어져 사망했을 것이라 예상했다.

시신이 발견되지 않아 1994년까지는 호적상에는 살아있는 것으로 되어 있었으나, 일본 민법상 실종 후 7년이 경과하면 자동으로 사망처리되기 때문에 법적으로 1999~2000년 사이에 사망한 상태다. 알래스카에서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소문은 루머로 밝혀졌다.

만약 SOS 구조를 받고 아무 문제 없이 돌아왔다면
현재는 80살 정도다.

 

일본에서는 그의 이야기로 책과 노래, 연극까지 나오기도 했다.